*유럽 디스코에 퍼포먼스를 이식한 이국적 실험, 그리고 밈으로 살아남은 유산*

정리 = 1979년 독일 뮌헨에서 탄생한 디스코 그룹 Dschinghis Khan(칭기즈 칸)은 그 이름처럼 강렬한 콘셉트와 퍼포먼스로 유럽 대중음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유럽 디스코 열풍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등장한 이들은 역사와 연극, 유머를 혼합한 무대로 ‘극장형 디스코(performance disco)’라는 독창적 지점을 개척했다.
■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를 위한 탄생
Dschinghis Khan은 1979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독일 대표 선발을 위해 작곡가 랄프 지겔(Ralph Siegel)과 작사가 베른트 마이눙거(Bernd Meinunger)가 기획한 프로젝트였다. 그룹명과 동일한 곡 “Dschinghis Khan”은 몽골 제국 창시자인 칭기즈 칸의 이미지를 차용했고, 밴드는 독일 예선에서 우승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본선에 진출, 최종 4위를 차지하며 유럽에 존재감을 알렸다.
공식 멤버는 Steve Bender, Wolfgang Heichel, Henriette Heichel, Edina Pop, Leslie Mandoki, Louis Hendrik Potgieter 등 6인으로 구성됐다. 특히 루이스 포트기터는 무대에서 칭기즈 칸 역을 맡아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겼다.

■ 디스코에 서사극을 결합한 무대
이들은 같은 해 발표한 정규 1집 《Dschinghis Khan》(1979)을 통해 대중적 성공을 거뒀다. 수록곡 “Moskau(모스크바)”는 러시아풍 멜로디와 에너지 넘치는 리듬으로 유럽 전역은 물론 오스트레일리아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이후 2000년대 온라인 밈 문화에서도 강하게 회자되며 제2의 생명을 얻었다.
이어 발표된 “Hadschi Halef Omar”, “Rom”, “Pasha”, “Mexico” 등은 아라비아, 고대 로마, 오스만, 멕시코 등 다양한 문화권의 이미지와 소리를 디스코 양식에 담아내며 ‘테마형 음악 여행’이라는 고유 장르를 구축했다. 이 같은 콘셉트는 각국의 민속 요소를 차용한 의상과 안무, 드라마적 연출과 결합돼 이들의 무대를 하나의 종합공연으로 완성시켰다.
■ 유럽 외 지역에서의 반향
Dschinghis Khan은 독일어라는 언어적 장벽에도 불구하고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구소련, 한국 등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Moskau”의 독일어 버전이 오리콘 차트에 진입했고, 러시아에서는 정부의 방송 금지에도 불구하고 클럽과 암시장 카세트를 통해 전파되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 라디오와 다방, 무도장 등지에서 “칭기즈 칸”, “모스크바”가 빈번히 재생되며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언어보다는 강한 리듬과 반복적인 후렴구, 그리고 기괴하면서도 흥미로운 퍼포먼스가 국경을 넘어 감각적으로 전달됐다.


■ 해체와 그 이후의 유산
1985년 그룹은 공식 해체됐다. 멤버 중 루이스 포트기터(1994년), 스티브 벤더(2006년)는 이미 고인이 되었으며, 이후 일부 멤버들은 다양한 이름(Dschinghis Khan Family, Dschinghis Khan – The Legacy 등)으로 재결합 공연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 랄프 지겔은 “Dschinghis Khan” 이름의 상표권을 보유하며 법적 분쟁을 벌이기도 했고, 이후 독일 내에서 공식적인 권리는 지겔 측에 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멤버들이 주도한 공연도 별도로 이어졌다.
■ 문화적 해석과 현재의 재조명
오늘날 Dschinghis Khan은 음악 그 자체보다도 ‘기획형 콘셉트 그룹’의 시초로서 평가받고 있다. 디스코 사운드에 민속적 요소, 유머, 연극적 무대 연출을 결합한 시도는 현대 K‑Pop 아이돌 시스템의 기획 방식과도 일정 부분 닮아 있다. “Moskau”는 유튜브 밈, 커버, 리믹스 영상 등을 통해 전 세계 젊은 세대에게 다시 소비되고 있으며, 2018년 FIFA 월드컵 러시아 대회 당시에는 경기장 주변에서 이 곡이 빈번히 흘러나오며 부활하기도 했다.
■ 종합 정리
Dschinghis Khan은 디스코라는 장르에 콘셉트와 서사를 결합한 최초의 퍼포먼스 그룹 중 하나로, ‘보이는 음악’이라는 개념을 대중에게 선보인 선구적 존재였다. 언어와 문화를 초월하는 그들의 음악과 연출은 단순한 유럽 팝의 변종이 아니라, 전 지구적 감각을 실험한 포스트모던적 작품으로 재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