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s”로 시작된 세계적 혁신… 짧지만 강렬했던 삶과 울림*

정리 = 아비치(Avicii·본명 팀 베를링)는 2010년대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대중화를 이끈 스웨덴 출신 DJ 겸 프로듀서다. 2011년 발표한 싱글 “Levels”로 글로벌 EDM 붐을 주도한 그는, 장르 간 경계를 허물며 음악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과도한 투어와 정신적 고통 끝에 2018년 4월 자살로 생을 마감, 음악계와 사회 전반에 깊은 충격을 남겼다.
■ EDM을 주류로 이끈 혁신자 (2010~2013)
Avicii는 2010년 “Seek Bromance”, “Fade Into Darkness” 등으로 유럽 클럽 씬에서 이름을 알렸고, 2011년 발표한 “Levels”로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곡은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등 여러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랐으며, 미국 빌보드 댄스 클럽 송 차트 1위에 오르며 EDM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싱글 “Wake Me Up”(보컬: Aloe Blacc)은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EDM의 대표작으로, 63개국 아이튠즈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 곡은 미국에서 플래티넘 6배 인증을 받았으며, 스포티파이 역사상 최다 스트리밍 곡 중 하나로 집계되기도 했다.


■ 장르 간 크로스오버와 사운드 실험 (2013~2015)
2013년 정규 1집 “True”는 EDM과 포크, 컨트리, 록 요소가 결합된 실험적 앨범으로, “Hey Brother”, “Addicted to You”, “You Make Me” 등 다수의 히트곡을 포함했다. 이어 2015년 발표한 2집 “Stories”에서는 Coldplay의 크리스 마틴, Wyclef Jean 등과 협업하며 힙합, 팝, 블루스까지 아우르는 확장된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 건강 악화와 조기 은퇴, 비극적 결말 (2016~2018)
2016년 3월, Avicii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상의 이유”로 투어 중단을 선언했다. 급성 췌장염과 과도한 음주, 극심한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었다. 그는 투어 은퇴 후에도 음악 작업은 지속했으며, 친구들과 여행 중이던 2018년 4월 20일 오만의 무스카트에서 자살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28세였다.
유족은 공식 성명을 통해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자신의 평화를 찾고자 했고, 예술에 헌신한 순수한 영혼이었다”고 밝혔다.

■ 음악적·사회적 유산과 재조명
Avicii의 유작 일부는 2019년 3집 “Tim”이라는 앨범으로 공개됐다. 이 앨범에는 “SOS”, “Heaven” 등이 수록됐으며, 팬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동시에 가족은 ‘팀 베를링 재단(Tim Bergling Foundation)’을 설립해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 예방 캠페인, 청소년 음악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생전에도 2012년 북미 투어 수익 전액을 기부해 아프리카 기아 해소 단체인 “House for Hunger”에 수백만 끼니를 제공한 바 있으며, EDM계에서 드물게 사회 공헌에 적극 나선 뮤지션으로 평가받는다.
2022년에는 스톡홀름에 인터랙티브 박물관 ‘Avicii Experience’가 개관됐다. 전시 공간에는 그의 작업실, 어린 시절 방, 미공개 트랙 등이 재현됐으며, 수익금 일부는 재단 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 동료 아티스트와 팬들의 추모
Calvin Harris, Kygo, David Guetta, Zedd, Martin Garrix 등 세계적인 DJ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수많은 페스티벌에서는 그의 음악으로 추모 공연이 열렸다. Kygo는 “Avicii가 없었다면 내 음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직접적인 영향을 밝혔고, Billboard는 “그는 EDM의 비틀즈였다”고 평했다.
2025년에는 사후 기념 앨범 “Avicii Forever”가 발표될 예정이며, 싱어송라이터 Elle King과의 신곡 “Let’s Ride Away”가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 요약
Avicii는 EDM이라는 장르의 정체성을 바꿔놓은 아티스트였다. 그는 대중성과 실험성을 동시에 갖춘 프로듀서였으며, 짧은 생애 동안 남긴 음악은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전했다. 그의 죽음은 음악 산업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고,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사운드 너머의 메시지’로 남을 것이다.